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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군의 가정폭력상담소가 지난해 말 중고생 2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음란물의 자유로운 인터넷 유출이 청소년에게 얼마나
위험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잘 알 수 있다. 설문에 따르면 성(性)에 대한 지식을
주로 어디서 습득하느냐는 질문에 조사대상의 37.5%(75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교육' 33.5%(67명), ‘친구' 17.5%(35명)를 제치고 ‘인터넷'이라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음성가정폭력상담소 변나영 소장은 “청소년들이

성에 관한 지식이나 가치관을 올바른 학교 교육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쉽고 가볍게 접할까 우려된다.”고 걱정을 표했다.

그렇다고 학교 성교육이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성 가치관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시간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쉽게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학교 내 성교육 필요성에 대해 ‘필요하다' 35.5%, ‘매우 필요하다'
26.0%로 답하는 등 상당수가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으나 현재 학교에서는 1년에 고작 10시간만을 성교육에 할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뤄지고 있는 교육 또한 여학생에게는 순결을, 남학생에게는 성병교육을 중점적으로 시키거나
여성과 남성의 신체구조 및 기능에 관한 형식적인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쳐 과거에 비해 빠른 신체발달을 보이고 있는
청소년들의 요구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실을 왜곡하는 인터넷 음란물과 현실과 동떨어진 학교 성교육. 그 사이에서 청소년의 성 가치관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청소년들의 성경험률은 증가하고 첫 성경험 연령은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최근
서울시내 중고생 2천9백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학생의 1.1%, 고등학생의 7.5%가 성경험이 있으며 첫 성경험
평균연령은 중학생 13.3세, 고등학생 15.2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음주 후 첫 성경험을 한 비율이 3명 중 1명(32.8%)꼴이며
성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67.7%가 가장 최근의 성관계에서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조사결과는 청소년의 성관계가 얼마나
무계획적이고 무방비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로 마무리되는 청소년들의 성경험.
이쯤 되면 성경험이 있는 여고생 4명 중 1명이 낙태를 경험했다는 통계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이에 비해 너무 빨리
어깨에 지워진 사회적 책임과 상처, 그리고 싸늘하게 변한 주위의 시선에 아이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는데 임신이 된 것 같아요... 만약 임신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아직 학생인데 병원 가서 낙태한다고
하면 해주나요? 돈은 얼마정도 드나요? 너무 걱정이 많이 됩니다. ㅜㅜ”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홈페이지(aha.ymca.or.kr)의 공개상담방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상담이 끊이지 않는다.
아는 오빠와 성관계를 했는데 임신한 것 같다며 걱정하는 17세 소녀, 혹시라도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면 자살해 버릴 거라며 자신을
원망하는 남학생 등 상담내용의 대부분은 잘못된 피임방법으로 인한 임신가능성 질문과 이후 상황에 대한 걱정 및 후회로 가득차있다.
자위를 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토로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잦은 자위로 인한 부작용이 두려운 학생, 우연히 열어 본
음란메일에 너무나 놀라 성(性)이 역겨워진 학생과 오히려 이런저런 궁금증이 솟아난 학생 등 청소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다.
‘케이블에서 이상한 것들을 많이 본적이 있는데요, 성적행동들은 실제로 저렇게 하는 거구나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어른되서
결혼하거나 남자친구 생기면 다 저러나요? 제가 본 내용이 무의식중에 박혀서 막 따라하면 어떡하죠? 나중에 이상한 사람이
절 흥분시켜서 제가 넘어갈까 두려워요.' 어느 고3 여학생의 진지한 질문은 미디어가 청소년의 성 인식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미디어가 그려내는 우리 시대의 성과 실제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강한 걸로 넣어주세요'
90년대 후반 논란에 휩싸였던 모 정유회사의 광고 카피다. 영화 ‘원초적 본능'으로 유명해진 샤론스톤이 등장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엔 충분하지만 이 광고에는 더욱 강력한 미끼가 숨겨져 있다. 시청자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문구가
그것이다. ‘진짜에 꽂아줘요', ‘따먹는 재미가 있다'처럼 식음료 분야에까지 손을 뻗친 섹스어필 광고는 시청자의 무의식 속에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 이미지를 깊이 박아 넣는다. 여성의 성적 매력과 에로티시즘을 부각시켜 여성을 남성의 욕망대상으로
취급하는 케이블 TV의 리얼리티쇼, 각종 연예 프로그램 또한 성 상품화 현상을 고정시키는 주범이다.
문제는 이러한 수동적인 성역할을 여성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TV를 통해 날씬하고 예쁘게 설정된 미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밤낮으로 다이어트를 하거나 성형수술에 필요한 돈을 모으는 이 시대의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상품화
시키고 있다. 마치 어느 광고에서 넓고 깨끗한 집안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인이 가전제품에 기대어 한마디
던지듯이 말이다. ‘여자라서 정말 행복해요.' 여성이 자율적으로 걸어버린 이러한 마법의 주문은 남녀 모두를 치명적인 성 역할의
감옥에 가둬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