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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다양한 전통 의상들 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독창성과 미를 가지고 있는 한복은 전통 속에 전해져 온 예(禮)를 의복에 고스란히 반영하여 고상하고 음전한 동양미의 진수이다. 우리네 한복에는 예와 격식, 동시에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함이
녹아 있어 의복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역사를 꿰뚫는 사료가 된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은 좋은 감에 고운 물을 들여서 계절에 따라 맵시 있는 옷을
만들어 입어 왔다. 옷이 입은 사람의 인품을 나타낸다 하여 만들 때에 바늘 한 땀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짓는 것을 기본으로 했으며, 바느질 솜씨에 따라 옷의
품질을 매겼다.

한복의 특징은 서양의복과 달리 직선으로 평면에 재단하고 바느질 과정에서 곡선을
살리는 방법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인체에 입혀졌을 때 몸에 딱 맞는 모양새가 아니라
편안하게 신체를 타고 흐르며 자연스러운 옷맵시가 나기 때문에 손바느질의 자연스러운 미가 한층 살아난다.
한복에도 유행이 있어 시대에 따라 모양새와 색감, 디테일이 달라진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흰옷 입은 백성'으로 불리워졌듯 삼국시대(BC 57년~) 이전 부족국가 시대부터 직조기술을 발달시켜 천 옷을 즐겨 입었는데, 신분사회가 형성되면서 귀족복장이 다양해진 것이 지금 한복 형태의 시초다.
다양한 생활상이 의복 안에 반영되어 있는 점을 주목해보자. 평민들이 입던 생활복은 활동이 편안하도록 디자인되었고 지역의 기후와
지리적인 특성에 따라, 계급이나 지위는 물론 직업에 따라서도 옷 짓는 방식을 달리 하여 의복 한 벌로도 역사적 사실이 심층적으로
드러난다.
흔히 한복은 움직일 때 동선이 크게 보여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품이 넉넉하기 때문에 오히려 활동을 자유롭게 했다. 뒷트임이 없는 통치마는 옛 여인들이 부엌일이나 농사일을 할 때도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재단된 예다.
시기별로 아녀자의 몸가짐을 엄히 단속했던 유교 번성기에는 머리에 쓰는 장옷 등이 발달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여염집 아낙들이
기생처럼 자유로운 계층의 옷차림에 영향 받은 유행을 즐겨 했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정치상황이 과거에도 의복에 영향을 미쳐
시절이 수상할 때에는 복식에도 허례허식과 사치가 심해지고, 중국의 침략을 받았을 때에는 중국풍으로, 몽고의 침략을 받았을 때는
몽고풍으로 변하기도 했다.
개화기에는 끈으로 허리를 조이던 치마에 어깨 끈을 달아 가슴을 조이지 않고 편안하도록 변화했고, 남자 옷에는 허리띠와 데님을
간소화하는 등 시대상에 따라 편리성이 크게 가미되었음을 볼 수 있다. 겨울에는 옷 안에 창호지를 덧대어 얇아도 방한이 잘 되도록
한 아이디어도 눈에 띈다.